Claude Code가 죽었을 때 나는 코딩을 멈췄다

연휴, 장염, 그리고 장애
3월 초 연휴였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져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어제 날 잡고 뭔가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장염에 걸려버렸다. 하루종일 끙끙 앓았다.
저녁 무렵에 정신을 좀 차리고 코딩 놀이를 하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Claude Code 서버가 먹통이었다. 인증 서버, 콘솔, Claude Code 전부. Anthropic 측에 따르면 "지난 한 주간 전례 없는 수요(unprecedented demand)"와 씨름하고 있었다고 한다. OpenAI의 펜타곤 계약에 반발한 사용자들이 ChatGPT에서 Claude로 대거 이동하면서 서비스가 버티질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장애 자체가 아니었다.
코딩을 멈춘 나
Claude Code가 안 되자 나는 그냥 코딩을 안 했다. 터미널을 열고 손수 코드를 짜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에이, 서버 복구되면 하지 뭐" 하고 맥북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더 웃긴 걸 깨달았다. 나는 OpenAI Codex Pro 계정을 갖고 있다. Codex CLI는 Claude Code와 비슷한 터미널 기반 코딩 에이전트다. 오픈소스이고, ChatGPT Plus 구독에 포함되어 있고, 내 맥에 이미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Codex를 써볼 생각이 1초도 들지 않았다.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대안이 바로 곁에 있는데, 떠올리지조차 못했다는 것.
앵커링, 현상유지 편향, 그리고 도구 잠금
처음에는 이게 앵커링(anchoring)인가 싶었다. 하지만 앵커링은 처음 접한 정보가 이후 판단의 기준이 되는 편향이다. 내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더 가까운 개념은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다. 심리학에서 현상유지 편향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으로, 손실 회피, 감정적 안정감, 의사결정 회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내가 Codex를 떠올리지 못한 건 Codex가 나빠서가 아니다. Claude Code라는 현재 상태에 인지적으로 잠겨(cognitive lock-in)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AI 코딩 도구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vim을 쓰는 사람은 VS Code를 안 쓰고, Chrome을 쓰는 사람은 Firefox를 안 쓴다. 하지만 텍스트 에디터나 브라우저는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습관이다. AI 코딩 도구는 등장한 지 겨우 1~2년인데 벌써 이 수준의 잠금 효과가 생겼다는 게 흥미롭다.
Claude Code와 Codex는 실제로 얼마나 다른가
둘을 비교한 글들을 보면, Claude Code는 "함께 협업하는 도구"이고 Codex는 "위임하는 직원"이라는 표현이 있다. Claude Code는 맥락을 깊이 파악하고, 질문을 던지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이다. Codex는 더 자율적으로, 주어진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둘을 전환하는 게 합리적이다. Claude Code가 먹통이면 Codex로 넘어가면 된다. 실제로 많은 개발자들이 둘을 병행하라고 조언한다. 정밀한 작업은 Claude Code로, 자율적 실행은 Codex로.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도구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익숙한 도구가 없으면 그냥 멈췄다. 마치 단골 카페가 문을 닫으면 옆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커피를 안 마시는 것처럼.
도구 의존의 시대
이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MIT Technology Review에 따르면 한 게임 인프라 엔지니어는 AI 도구 없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다 이렇게 말했다. "본능적으로 하던 것들이 수동적이고, 심지어 번거롭게 느껴졌다(things that used to be instinct became manual, sometimes even cumbersome)."
Anthropic 자체 연구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AI 코딩 보조가 스킬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AI를 쓴 그룹은 쓰지 않은 그룹 대비 숙련도 테스트에서 17%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디버깅 능력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났다.
물론 나의 경우는 스킬 저하와는 다르다. 코딩 자체를 못 하게 된 건 아니다. 다만 AI 없이 코딩하겠다는 의지가 사라졌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 패턴의 문제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AI 없이 코딩하는 건 이제 재미가 없다"에 가깝다.
단일 장애점으로서의 AI 도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은 그 하나가 죽으면 전체가 멈추는 컴포넌트를 뜻한다. 3월 2일, Claude Code는 나의 코딩 워크플로우에서 단일 장애점이었다.
장애 당시 The Register의 보도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에는 "Claude가 죽으니 개발자들이 AI 이전 시대 습관으로 돌아가 직접 코드를 작성해야 한다"는 반응이 넘쳤다. 자조적인 농담이지만, 반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내 워크플로우는 취약하다. 서비스 하나에 의존하고, 대안 도구가 있음에도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엔터프라이즈 환경이었다면 장애 대응 계획(failover plan)이 당연히 있어야 할 구조다. 그런데 개인 개발자 수준에서 이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특별한 결론은 없다. Codex를 대안으로 세팅해두겠다거나, AI 없이도 코딩하는 습관을 유지하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Claude Code가 복구되면 다시 예전처럼 쓸 것이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나는 AI 코딩 도구의 "사용자"가 아니라 "거주자"가 되어 있었다.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 안에 살고 있었다. 그 도구가 멈추면 나도 멈추는 것. 그리고 아마,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연휴의 교훈이라면 이거다. 장염은 하루면 낫는데, 도구 의존은 자각하기가 더 어렵다.